2009 INPEACEROUT-The Routf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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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류티미르의 일상 이야기 +Link+


츤데레 서점씨의 고백 -1- 지금은 배송중 프로젝트


오늘도 당신에게, 책을 보냅니다.
그곳에, 나의 마음은 닿을 수 있었는지요?

 

"이전에 배송 부탁했던 책이 도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배송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귀하께서 부탁한 책은 현재-"

지구를 반 바퀴를 돌아, 마음을 전하는 이야기

 


'띵동.'

"배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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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날씨는 맑음. 이런 시시한 단어만으로 글을 시작하는 나는 작가를 지망하는 어중이떠중이 작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방 구석에 앉아 만년필로 원고지에 끼적거리고, 가득 찬 쓰레기통에 종이를 던져넣는 데 전문가가 된 그런 사람이다.

매일같이 통장을 바라보며 아연실색하고, 자신의 소설이 어떻게 평가받는지 알고 싶어서 출판사 정문을 기웃대고, 우연히 알게 된 편집자 형에게 사정사정해서 광고 카피 일이나 얻어내는 그런 시시한 인간이, 바로 나다. 

글은 적당히 쓸 수 있고, 자만은 아니지만 대학 시절 교수님에게도 칭찬받은 적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스토리다. 스스로도 깨닫고 있는 일이지만 재밌는 스토리를 쓴 적이 없다. 

어떻게 하면 마음에 와 닫는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변변찮은 문예상조차 하나 없이, 언제나 필력이 아깝다는 말만 듣고 있었다.

꿈을 쫓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고, 노력하는 한 언젠가 꿈이 다가온다는 말을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었건만, 슬슬 자신의 꿈에 회의가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벌써 결혼해 한 가정을 꾸려가는 동기도 있고, 열에 아홉은 이미 취직해서 번듯한 직장에서 수입을 벌고 있는데, 나는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하루하루 아르바이트와 3류 중소기업의 카피라이터에만 만족하면서 살아도 되는 걸까?

하나뿐인 자식을 믿고 꿈을 응원해 주던 부모님께서도 슬슬 단념하려고 하시는 스무 살의 중반이 넘어가던 날이었다.


"살아 있냐? 살아 있으면 대답해라.살아 있지 않아도 대답해라."

"살아 있으니까 전화를 받았겠죠, 형.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드러누운 채 건성으로 대답한 전화는 평소와 같은 안부전화가 아니라 두 달 만의 일 관련이었다.

특수 카메라를 제작하는 벤처기업에서 광고에 쓸 만한 카피라이트를 부탁했다는 단순한 내용인데다 보수도 별 것 없는 금액이었지만 나에게는 거절할 순 없을 정도로 좋은 이야기었다.

이런 벤처기업은 광고문구를 가진다는 점 하나에 집착하기 때문에 평균보다 높은 대우를 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가 광고주가 카피 하나하나에 불평을 가질 리가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나도 이 바닥에서 꽤 오래 굴렀다는 걸까. 당연한 듯이 승낙하고 내일 편집자 형의 사무실로 나가기로 약속한 뒤 전화를 끊었다.

누운 채로 바라보는 천장에는 백열등이 여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끊어저 내 배 위로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모습이 마치 나랑 같아서, 쓴웃음만이 입가로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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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맡아 주시는 거죠? 감사합니다!!"
다음 날, 찾아간 편집실은 줄초상이라도 치른 듯 퀭한 풍경이었다. 다크서클을 몇개나 덧그린 인간이 사방에 널려 있는 풍경은 마치 얼마 전

에 친구 집에서 했던 좀비 게임을 방불케 했다.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거대한 다크서클을 얼굴에 그린 편집자 형은 위에 구멍이라도 뚤린

듯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질주해 왔다. 진짜, 좀비 게임의 보스 캐릭터라고 생각될 정도로 섬찍한 모습이었기에 손에 들고 있던 문고본 책으

로 얼굴을 두드려팼지만 그 정도는 평소의 우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사건사고였다고 생각한다.
"...정말, 무슨 일인지 알려 줘, 형."
마치 구세주라도 나타난 듯이 살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편집국원들을 무시할 수도 없고, 가장 해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형의 입에

억지로 커피를 부어넣으며 물어보았다. 사실, 내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신분도 아닌 데다가, 일이라면 뭐든지 궁한 상태이기도 했으니까.

뭐, 이 베테랑 편집실을 여기까지 몰아넣는 카피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상상이 가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들은 이야기는 생각보다 별 것 아닌 이야기었다.
기술만을 모토로 삼고 있던 벤처 기업의 연구소장이 연구소장협의회에서 본 다른 연구소장의 명함에 적인 멘트를 보고 컬쳐소크를 받아 자신

들도 무언가 카피라이트가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트를 의뢰를 했고, 처음으로 카피를 받은

게 지난 주였다. 그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원활하게 끝날 줄 았았다고 했다.
문제는 지난 주의 미팅에서 그 연구소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것이었다.
적당히 중2병에다 멋진 느낌만 강조하는 카피를 적었더니 바로 "이런 걸 맡기려고 돈을 준 게 아닙니다!"라고 소리질렀다고.
벤처 기업의 연구소장이면서 꽤 문학 작품에 조예가 깊어 왠만한 카피라이트는 바로 아웃을 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날 부른 거야? "
"그래. 우리 회사도 카피문구 전문은 있지만 전부 퇴짜맞아서 외부인력 중에서 가장 싼 너를 고른 거지."
잔인하게 칼로 후비는 듯한 말이었지만 부정은 하지 않는다. 한 일에 몇백만 넘게 받아가는 전문 카피라이터의 십분의 일만으로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는 나를 고르는 건 나에게는 약간 슬프고 잔혹하기까지 한 말이지만 회사로써는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처음에 이 회사를 선택하

게 한 경쟁사의 카피 자체가 내가 작업한 일이었다고 하니 의외로 적임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진짜냐.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내가 적은 카피라이트 보고 실망할 가능성은 진짜 높지 않아? 단지 우연이고."
"그렇지만 너도 안된다면 우리 회사에서는 손 놓으려고 결정할 생각이니까, 거리낌 없이 일하기만 하면 돼. 네 실력은 우리가 알고 있고."
"…………이 이야기, 만약 내가 거절하면 어떻게 돼?"
"어쩔 도리가 없게 되지."
입으로부터 영혼이 삐져나올 것처럼 보이는 형은 살아있는 시체 그 자체였다.


"....알았어."

되돌아보면, 나에게 닥친 상황이나 책임감보다는, 동정심과 공포가 더욱 앞섰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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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강조할 만한 이미지와 회사의 일에 대한 개요를 듣고 싶습니다만...."
"일단 회사의 이미지는 빛과 같은 느낌입니다. 특수 카메라를 다루면서 순간순간을 찍는 이미지를 구체화 할 수 있는 카피가 필요한데..."
"컬러는 옐로우가 좋죠 옐로우. 빛이라면 자고로 노란 색 아님까?"
"하지만 벤처기업이라고 해도 나름 지위도 있고, 꽤나 품위있는 디자인을 원하고 있단 말이지..."
종이에 수많은 생각과 말을 하나하나 받아적어가면서 멘트를 생각한다. 원래 카피라이트라는 것 자체가 이렇게 대강대강 끝낼 수 있는 업무

가 아니긴 하지만 나란 인간은 오래 생각할 수록 망치기만 하는 인간이다. 이 정도가 딱 맞는 어수선함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너무 자주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긴 하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적당한 카피를 잡고, 내일 다시 만나 회의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줄초상인 처음 분위기와는 달리 조금은 밝아진

듯한 공기를 뒤로 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후텁지근한 여름 바람이 불어와 당장이라도 에어컨이 켜져 있는 사무실로 귀환하고 싶은 마음이 들

었지만 억누르고 거리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선다.  왠지, 오래간만에 생각없이 책을 읽고 싶어, 책방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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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의 책방은 츤데레 책방이 아닙니다. 그냥 책방입니다.

 


날개

내가 지금도 그대를 기억하고 있는가.

그대는 지금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가.

여기 혼자 서 있는 나로써는 일 수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저 멀리에, 언젠가 그대가, 나를 보고 웃을 수 있기를 바라기에,
그러기에, 나는, 나는.


빈말로 말하려고 해도 내가 태어난 마을을 좋다고 말할 순 없다는 걸 잘 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상냥함 같은 건 찾아볼 수 없고,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조차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마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대에는 누구나 그랬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처벌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마을은 조금 심했던 것 같았다. 단 한명의 외부인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끼리 살아가는 그런 마을.

우리 집은 마을에서는 "살짝 이단"  취급을 받았다. 아버지가 도시에서 부도를 내고 할아버지가 살던 이 마을로 돌아왔던 것이다. 나나 아버지는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한번도 이 마을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조금 익숙함이 남아 있던 성씨라도 가지고 있었기에 외면당하지는 않았던 것이겠지만 우리는 그 정도의 무관심마저도 힘들어했다. 아버지는 자신 때문이라며 더욱 자책했고,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도시에서부터 이어진 딱 하나의 취미는 바이크였다. 전자바이크를 몰며 숲을 달리는 동안에는 아무런 시선도 내게 닿아오지 않았다. 마을은 사람을 차별할 줄 알지만 산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따돌림당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나는 자연히 종일 바이크를 몰고 산으로 강으로 쏘다녔고, 그런 내게 마을 사람들은 불량 딱지를 붙이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평가는 이미 나에겐 닿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건 아버지와 낡은 바이크, 그리고 넓은 산이었지 마을이 아니었으니까.,

그 날도, 난 바이크를 몰고 산을 쏘다니고 있었다. 방구석의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손에 집어든 낡은 잡지에 실린 유성우의 기사에 이끌려 야트막한 언덕의 꼭대기에라도 올라 소원을 빌 생각이었다.

 나나 아버지는 17년 넘께 신이라는 것에 기댄 적이 없었긴 하지만 적어도 신에게 경의를 표할 줄은 아는 사람이었다. 지나가는 길에 사원이 있으면 들어가서 기도는 못할망정 말소리를 죽이며 걸을 줄 알고, 우연히 만난 사제님께 신의 은총을 빌어줄 수 있는 그런 아버지셨다.

그렇게 허리를 숙이고, 평화와 안전을 기원한 나와 아버지의 경의가 조금이나마, 적어도 으시대며 사원을 불도저로 몰아내는 턱시도의 남자들보다는 하늘에 닿았지 않았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만을 가지고 난 언덕에 오를 결심을 했다.

간식 대용으로 집어먹을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가방에 우겨넣고 별똥별이 떨어지기 전까지 세 가지 소원을 빌면 전부 이루어진다는 낡은 노래를 배경으로 흘리면서 나와 바이크는 언덕을 넘어 달렸다.

 통통거리며 달린 바이크가 야트막한 언덕에 도착했을 즈음엔 변덕스러운 소나기구름이 하늘을 메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페르세우스가 주최하는 대형 소원 집계 앙케이트는 소박하게 신께 경애를 바친 서민들에겐 설문지조차 보여주기 싫어했던 거다. 나는 쓸데없이 북받친 설움과 이유모를 배신감에 바이크의 시동을 거칠게 걸며 언덕을 뒤로 했다. 조금 더 기다리면서 하늘이 개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 때의 내게는 그걸 기다릴 만한 인내심이 없었다. 사실, 바이크란 녀석도 형편없이 낡은 고물이라 빗방울 속을 뚫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삐끄덕대는 녀석이었기에 그런 도박을 할 여유도 없었긴 했다.

 

비 오는 하늘 아래에서 그녀를 만났다.
싸늘하게 쏟아져내리기만 하던 빗방울 사이에 그녀는 혼자 서 있었다.
낡은 나무 아래, 비로 젖어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고개 뒤로 넘길 생각을 하지조차 않은 채 그녀는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어이, 비 내리는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녀는 겨우 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기고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렸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요."
돌아본 그녀의 얼굴은, 울고 있는 것 같았다.


거울 속의 수선화 -2 소설


언제나와 달리 불이 꺼진 방. 열린 저쪽 문에서는, 처음 보는 남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당신, 누구야.

그녀가 아니다. 언제나 봐 오던 그녀가 아니다.

어째서, 남자가 저기에서 들어온 걸까. 저 문으로는, 그녀 외의 사람은 들어올 수 없을 터인데

, 당신의 그녀의 주치의입니다.

. 어째서그녀가그녀가 아파

남자는, 그녀가 회사에서 쓰러졌다고 말했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병원에 왔다고. 그래서, 그녀의 주치의였던 자신이, 대신 왔다고. 그러고 보니 남자를 어디서 봤었는지 기억해 냈다. 전에 언젠가, 그녀를 만나기 전에 다리를 다쳐서 찾아갔던 병원의 의사였나. 그걸 깨달은 뒤에, 남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남자는, 꽤나 침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일이죠?"그녀가, 많이 아파요.

근수축 돌연변이성 신체 붕괴 어저고저쩌고였나, 뭔가 하는 병이었던가 한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고, 남자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병명이라고 하던가. 그녀는 예외 케이스였고, 이 병에 걸린 사람은 바로 죽는 게 정상이라고 했다.

그래, 그녀는 그런 병을 갖고도 나를 좋아해주었던 건가.

조금, 죄악심이 생겨서, 묶은 머리를 배배꼬았다.

그 병에 걸린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따라하게 된다고 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따라하면서, 그 사람의 모습, 행동, 성격마저 따라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고. 그러면서, 그 사람을 닮아간다고 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갑자기 신체가 무너진다고 했다.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될 순 없다. 그러니까 몸이 서로 변하고, 변하다가 버틸 수 없게 되는 거라고.

매달려서 울었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살아나게 할 수 있냐고.

남자는 말했다.

그녀의 또 하나의 모습의 원형을,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이면 된다고.

붕괴되는 인간의 부분을, 그녀가 따라한 원본을 이식하는 것으로 붕괴를 막는다고

 

그 후.

병원의 침대에서 그녀를 봤다. 그녀는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병실 건너에서, 나는 그녀에게 웃어주었다. 그녀도, 그런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다시 그녀를 만난 건, 수술 후였다.

수술 후에 돌아간 집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하지만, 조금 이상했다.

그녀는 왼손잡이였는데, 어느새, 오른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왼쪽 옷을 걷어 올렸는데, 어느새, 오른쪽 옷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TV를 같이 보는 것도, 같이 말하는 것도 같았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상해진 걸까

아니, 내가 이상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내게 인간의 몸은 남아 있지 않으니까.

내 몸은, 하나도 남김없이 그녀를 위해 줬는데,

이 몸은, 단지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기계일 뿐이니까.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드디어 그녀가 나를 만지기 시작했으니까.

방 건너에서, 말과 마음만으로 말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육체적 접촉을 시작한 것이다.

감격했다. 감격했었다. 첫 날은 계속 울었고,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끌어안고만 있었다.

그래, 그 행복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다시 와서, 투명한 벽으로 막아버리기 전까지.

더 이상 나를 그녀와 같이 있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녀가 자기 자신의 몸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같이 있게 할 수는 없다고. 그녀에게 어떤 악영향이 끼칠지 모른다고.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벽으로 막은 뒤, 가끔, 가끔 그녀가 두 명으로 보이는 일이 생겼다.

분명히, 이전과 같이 움직이는 그녀가 있고, 희미하게 방 한구석에서 움츠리고 앉아 있는 그녀가 있었다.

처음엔,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방금 전까지는, 그랬다.

 

아아아아…"왜일까.

난 그녀에게, 처음으로 그녀에게 붕어빵을 먹여주려고 했을 뿐인데.

처음으로, 그러고 싶었을 뿐인데.

 

어째서.

 

팥이 공중에 떠 있어

 

어째

 

이런 이런. 이런 일이 되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걸요?"

조금 씁쓸한 듯이, 남자는 웃었다.

이러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남자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예상했던 수십의 ,수백의 스토리 중에서, 이런 스토리는 있던 적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가 누구보다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인간 간의 관계를 조종해서 전쟁도, 대공황도, 정치적 사건도, 살인도, 뭐든지 일으킬 수 있던 게 남자였다. 그래서 남자는 이 세상 모든 걸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조금 틀린 것이었을까요. 라고, 남자는 중얼거렸다.

그 제멋대로인 남매나 가족조차 제 예상을 몇 퍼센트 정도만 벗어났습니다만, 이번 남자는정말이지.

기껏해야, 절망한다고 생각했다.

혹시 하나, 테러의 장기짝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 인간이라면, 그가 잘 알고 있는 인간이라면.

하지만 그 사람은, 다른 결과를 선택했다.

절망하지도, 테러의 생각도 없이.

그 사람은, 바로 남자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양의 테러를 떨구어 버렸다. 남자의 정신세계의 근본을 흔드는 질문을.

, 이런 사람도 있다정도로 생각하면 되겠군요. 조금. 조금 놀라게 한 대가는 받아내고 싶지만, 너무 늦었나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남자는 한숨 쉰다.

그렇게, 불빛 하나 없이 조용한 도시의 밤은, 담뱃불의 빠알간 자취만을 남긴 채, 검푸른 구름 속에 잠겨 갔다.

 

지직. 지지직. 지지지이익.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어째서,

우리들은 하나가 될 수 없는 걸까.

 

어두운 방 아래서 그 남자는 말했다.

우린, 언제까지나 하나가 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지만, 그건 싫다. 그런 슬픈 이야기는 더 이상 들을 기력이 없다. 이 세상은 좀더, 이보다 좀 더 아름다운 이야기여야 할 것인데. 그래서, 너와 내가, 함께 만들어 갈 세상에는, 그래야 할 것인데. 그래야 할 것인데.

 

그래서, 결정했다.

그녀가 무엇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나는 결정했다.

 

챙그랑.

그 남자가 만들어 낸 가짜의 그녀를, 부순다.

나와 그녀 사이의 벽을 잘라 부수어 낸다.

그리고, 저 멀리에, 저 방의 구석에서,

지금까지 버려졌던 진짜 그녀의 곁에 다가선다.

 

여기서, 서로 하나가 되기로.

더 이상, 내버려 둘 수 없다.

 

지금까지 외로웠으니까.

지금까지 슬펐으니까.

더 이상 고통스럽고 싶지 않아.

 

그녀의 보드라운 육체를, 나의 강철같이 굳센 육체에.

그녀의 따스하고 보드라운 마음을. 나의 황폐한 마음에,

 

그리고 그녀의 팔딱이는 심장을,

이 나의, 몸속에

 

쿨럭.

그녀는 기침한다. 조금 괴로워한다.

하지만 괜찮아.

나는 행복하니까. 나는 괴롭지 않으니까.

조금만, 조금만, 조금만

 

그녀가, 마지막으로 웃었고,

나의 머릿속은, 하얀 번개가 튀듯, 지워져 갔다.

 

이제 떨어지지 않아

그녀가 그렇게 말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망 시간은이틀 전, 정전 시간이군요."

조용히, keep out이라고 쓰여진 테이프를 감으며 서부 경찰지구대의 유 경감은 말했다.

"아니, 사망시간이라기는 조금 뭐한 상황인데. 이건."

그 말을 들으며, 머리를 감싸 쥐는 경찰이 또 한 명. 중앙지부에서 최근 전근해 온 젊은 형사. 케이 슈엔탈은 진심으로, 이 사건, 포기해버릴까 하고 생각했다.

"사망 원인. 전원 차단에 의한 의식의 쇼트. 정도네. 생전에, 나르시스트였다고 하던가."

". 자기 자신을 정말로 사랑해서, 자신의 분신을 만들려고 했었다고 자료가 남아 있어요. 연구실 때의 자료는 여기."

경감이 건네준 서류를 검토하며, 젊은 형사는 허탈한 듯이 중얼거렸다

 

"자기 자신을 먹기 위해서, 스스로 몸을 기계로 바꾸다니. 비상식에도 정도가 있어."

 

"그래도, 조금 낭만스럽지 않습니까. 사랑해서,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다는 거, 로맨스 아니에요?

그게 낭만이라면, 난 네 녀석을 잘라버리겠어.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리며, 슈엔탈 형사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을 배시시웃으며 보던 유 경감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같은 포즈로 사탕을 물고,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어 보았다. 반투명 전신거울의 반대편에서, 형사와 같은 포즈를 취하면서.

거울 건너에 선 그 둘의 모습은, 의외이리만큼 닮아 보였다.

그럼, 먼저 갑니다. 처리 반에게 상황 전달하고 올 게요"

하지만, 그 말을 전혀 무시하며, 형사는 단말을 꺼내 사건 기록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유 경감은 날름-하교 혀를 내밀고는, 테이프를 치우고 본서로 돌아가는 쿠페(사실, 남자의 자가용이다만)의 시동을 걸었다. 부웅-하고 출발하는 쿠페의 소리를 마지막까지 듣고 나서도 남자는 단말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타닥. 타닥.

조용히 단말을 입력하던 소리만 들리던 가운데-

"그래도, 참 행복한 죽음이었겠군."

조금, 입가가 씁쓸한 듯이, 남자는 웃었다.

그래. 죽음만은, 행복할 수 있었으니까.

부러운 듯이. 아주 부러운 듯이.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

슬픈, 이야기였네.

어쩔 수 없잖아요그게 인간이었다면 더 좋은 결말이었을 텐데.

당신에게만 그랬겠지.

여자는, 눈앞에서 능글거리는 남자에게 신물이 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와중에도, 그 손은 노트를 붙잡고 방금 들은 이야기를 적어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던 남자는, 손을 들어

자자. 차부터 마시고 하죠. 오늘은 다즐링으로 하시겠습니까해롯의 것이 있어요.

사절이야. 오늘 오후에 동생이랑 비행기 타야 돼. 여기서 시간 죽일 순 없어. 그리고 네녀석보다 잘 타는 녀석이 목적지에 있어.

들어 올린 손으로 선반을 열어 홍차를 꺼내며 권하는 남자를 무시하고, 여자는 일어섰다. 여자는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없는 듯했다. 애초부터, 이 이야기만을 들으러 온 것 같은 느낌.

이런 이런. 옛 친구가 타 주는 차 정도는 마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다시 한 번 말하는 데, 사절이야. 너 같은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날 죽이고 싶은 정도라고?"

능글능글 웃는 남자를 쏘아보며, 금색 머리칼을 다시 묶으면서 여자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보면서, 계속해서 능글맞게 웃었다.

, 마지막으로.

뭔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죠?"

여자는, 문을 열면서, 대꾸했다.

당연하잖아. 나는, 이미 인간이길 버렸어.

. 하고 문이 닫혔다.

남자는, 흡족한 듯이 웃으며 창가에 다가갔다.

조금은, 자신의 예상 안이었다고, 약간의 기쁜 감정을 담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 밖에서는 여자가 가까이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있었다.

좋은 여행되시길. 이야기하는 톱니바퀴의 여왕님, 류티 슈엔탈.

다음 이야기는, 어디에서부터일까.

다즐링 홍차의 향기가, 수선화가 흐드러지게 핀 창밖으로 퍼져나갔다.

그 향기를 맡으며, 남자는, 조금 즐겁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내일에, 인간의 내일에 희망을 실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거울 속의 수선화 -1 소설

거울 속의 수선화

 

한 사람이 속삭인다.

 

나는, 그대처럼 되지 못해?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이토록 사랑하는데,

 

나는 네가 될 수 없는 걸까.

 

어째서.

 

 

눈을 뜬다.

얇은 벽지 너머로, 차가운 콘크리트 벽의 감촉이 느껴진다.

어제까지, 분명히 따뜻한 네가, 저쪽에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차가운 걸까.

생각할 수 없다. 생각나지 않는다.

때때로, 시간이 멈춘 것 같게 느껴진다.

이 내가,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건 그녀와 같이 있을 때 뿐.

더 이상, 감촉조차 느낄 수 없지만, 그렇지만,

 

그 남자가 말했다.

이 세상에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뿐이라고.

검은 머리칼을 슬픈 듯이 어깨 위로 쓸어내리며, 쓸쓸한 듯이.

하지만, 그런 말 따위, 들릴까 보냐.

눈앞에 그녀가 있는데, 그녀가 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째서 있어서는 안 되는 것뿐이라는 걸까.

그 남자는, 단순히 외로운 거였을 거다.

나같이, 사랑하는 그녀를 찾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걸 테지.

하지만, 내게는 그녀가 있어.

저기, 저기, 나처럼 방 건너에 앉아서, 숨을 몰아쉬는 그녀가 있으니까.

그래, 난 외롭지 않아.

그래. 외롭지 않아.

 

, 요즘 이상해.

서류를 끝내느라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정돈하던 도중에 연이 말했다. 자기야말로 언제나 후줄근한 차림으로 왔다 갔다 하는 주제에 말이 많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녀석이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이때의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시끄러. 이상한 일 따위 있을 리가 없잖아.

퉁명스럽게, 녀석의 말을 자르면서 마우스를 움직여 파일을 연다. 열린 컴퓨터 화면에선 새로 제작중인 민간용 우주 콜로니의 설계도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 구석구석에서 보이는 붉은 체크 표시로 보아, 이번에도 불완전한 것 같다. 정말이지, 귀찮은 일이다. 아무리 고쳐도 고쳐도 사람 마음에 들게 하는 건 힘들다. 하나를 요구하면 다른 하나를, 그 요구를 만족시키면 또 다른 걸 요구한다. 거주자들에게는 설계자가 어떤 생각으로 건물을 짓는 지 모르기 때문에 제멋대로로 요구하는 것일 거다.

저기,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아니. 안 듣고 있어. 일 바쁘니까 일이나 하자. 바보꼬맹이.

누가 꼬맹이라는 거야! 랄까, , 요새 나한테 너무 심하다?"

볼을 부풀리며 찌릿하고 노려보는 자칭 숙녀(26)는 방금 전까지 들어다보던 서류철을 그대로 내리칠 자세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저런 멍청이 같으니. 제출 서류를 망가트려봐야 네 일이나 늘어날 테지. 마음대로 해봐란 듯이, 나는 녀석을 무시하고 서류에 눈을 돌렸다.

으우. 치사해, . 나 같은 미녀가 이렇게 애원하는 데 듣지도 않는 거야?

중간에 소 자가 빠졌어. 꼬맹이.

절대 빠진 거 아니라니까?
""지하철 요금 아직도 할인받는 주제에 말이 많네."

바락바락 기어오르는 꼬맹이(다시 말하지만, 26)를 무시하며, 설계도의 기입 상황을 확인했다. 이 설계도를 입안한 게 어디의 바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을 완전히 무시한 설계를 바라고 있었다. 이런 구조라면, 인간은 자신의 몸으로 살아갈 수 없다.

기계로 개조하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꼬맹이, 네 일이나 해. 어차피 이런 전함을 위해 AIM이 되려는 녀석이 있겠어?

그래. 바보가 아니라면 자신의 배를 탄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인간을 포기하진 않을 거다.

으우. 내 일은 끝났다고. 벤 바보.

그래, 어쩌면 난 바보인지도 모르지.

우앗, 벤이 수긍하다니! 애인이다! 벤한테 여자가 생긴 거야!

닥쳐. 바보.

이런 일상을 유지할 수만 있는 건, 인간뿐일 테니까.

 

아마.

 

아마도.



 

길을 걷는다.

누나. 준비는 끝났어?"

아니. 아직 찾아가봐야 할 곳이 남아 있어. 일단 거기부터.

, 잠깐만, 케이 형사님 좀 바꿔봐. 이야기가 있어.

"…지갑, 놓고 왔다.

무슨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른 거야, 세츠가와!

거리의 소음은 언제나 활기차다. 길을 걸어가는 남매의 대화, 울리는 자동차 소리와, 투덜대는 젊은 커플의 이야깃소리. 타박타박 걸어 다니는 발소리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CM 사이에서, 가끔 들리는 정겨운 붕어빵 파는 소리.

, 다섯 개 주세요. 얼마에요?

내가 다섯 개. 그리고 그녀도 다섯 개.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그녀도 분명 붕어빵을 사서 들어오리라. 집의 건너편 반대쪽에서 웃으면서, 붕어빵을 품에서 꺼내며 말하겠지.

. 하나 먹을래?

그럼 나는 언제나처럼 고개를 젓고,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따라한다. 그렇게, 서로 나란히 붕어빵을 먹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서로 나란히 텔레비전을 보고, 라디오를 듣고, 그러고, 잠이 든다.

그녀는 왼손잡이. 나는 오른손잡이.

그녀의 옷은 오른 소매를 걷어 올리지만, 나는 왼 소매를 걷어 올린다.

마치, 거울과 같이. 그녀와 나는 움직인다.

때때로, 이 내가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면,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이 아픈 척을 한다. 정말이지, 한 번쯤 와서 봐 준다면 좋을 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녀는 언제까지나 철부지. 나이가 들어도, 그녀의 장난기는 멈추지 않았다.

나의 회사에 연이라는 꼬맹이가 있는 것처럼, 그녀의 회사에도 비슷한 이름의 남자애가 있는 듯하다. 나의 고향집에 신사가 있다면, 그녀의 고향집에도 신사가 있다는 듯하다.

마치, 거울과 같이.

나와 그녀는, 천생연분과도 같았다.

내가 아는 것 중에, 그녀가 모르는 건 없다.

그녀가 모르는 것 중에, 내가 아는 건 없다.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책을 읽고, 같은 감상을 가진다.

 

그러기에,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는 나를 사랑해 준다.

 

언제까지 변할 리 없는 이야기.

그게, 우리들만의 이야기.

그 이야기에, 남자가 끼어든 것은, 얼마 전이다.


수학의 노벨상 필즈상 이야기

수학의 노벨상 필즈상 이야기

 

 

 

이번 2010년 필즈 메달 수상자 네 명 중 세 명이 IMO 출신 수학자라는 소식이 눈을 끌었던 적이 있다. 그 중의 한 명은 IMO 시험 도중에 비에타 점핑이라 불리는 수학 증명 기법을 만들어냈던 것으로 유명한 응오바오쩌우였다. 당시 1988IMO 6번 문제는 6명의 정수론 학자와 두 명의 문제출제자가 시험 시간인 6시간 동안 풀지 못했던 것으로 유명했던 문제였다. IMO 수상자가 필즈 메달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테렌스 타오를 위시한 수많은 수학자가 IMO 출신이다.

필즈메달은 노벨상에 버금간다고 불리는 수학의 메달이다. 노벨상이 매년 수상하는 것과 달리, 4년에 한번씩 열리는 국제수학자대회(ICM)에서만 시상하므로 노벨상보다 더 희소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필즈 메달. 더군다나 나이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노벨상과 달리 나이에 제한까지 있어서 미래를 이끄는 수학자를 뽑는 제전이라고도 불린다. 필즈메달의 수상자가 되면 그 다은 세기의 수학을 선도한다고 할 정도로, 필즈 상이 갖는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런 필즈 상의 수상자 중에는 천재 수학자가 많다. 과학고생으로써, 가장 비슷한 예를 가진 수상자를 뽑자면 존 밀노어, 장 피에르 세르,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 그리고리 페렐만, 테렌스 타오 등을 들 수 있겠다.

 

존 밀노어는 천재 수학자로 유명하다. 어느 날 수업에 지각한 밀노어는 교수가 칠판에 적어 놓은 문제 세 개를 과제로 생각했고, 다음 주 수업 시간에 그 문제의 풀이를 제출하며 세 문제 중 두 문제 밖에 못 풀었다.”고 말했다. 과고에서라면 가끔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문제가 문제였다. 그 세 문제는 매듭 이론에서 전설로 알려진 미해결 문제였던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페리-밀노어 정리로, 매듭 이론의 쾌거로 꼽히는 정리 중 하나다. 그는 7차원 공간의 다양체적 성질에 대한 업적으로 필즈메달을 받았는데, 그는 이 논문으로 미분 위상학이라는 학문의 정립에 큰 공헌을 했다.

 

테렌스 타오는 수학 영재 출신의 수학자 중 대표 중 하나다. IMO에서 열세 살의 나이로 최연소 금메달 수상이라는 기록을 만들고, 스무 살에 박사 학위를, 스물한 살에 교수가 되는 등, 수학천재의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겠다. 그는 21세기의 폰 노이만, 에어디시라고 불리는 등 20세기 수학에서의 싱크탱크였던 두 사람의 위치를 이어받았다. 그렇지만 그런 그는 천재가 반드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하는 수학자이기도 하다. 수학은 높은 순위나 점수, 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며, 수학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발전과 응용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일부 천재 수학자들이 하는 업적은 모두 기존 수학자들의 수많은 작업과 이해의 기초 위에 건설되었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 자신이 천재 수학자의 대표로 불리면서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것은 그의 겸손함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장 피에르 세르도 위의 두 수학자와 함께 천재수학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최연소 필즈 상 수상자(27)이며, 유일하게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30살 이전에 교수직을 맡았고, 울프상, 아벨상, 필즈상을 모두 받은 수학자로써도 유명하다. 14~15세에 미적분학을 독학하고, 호모토피 개념을 정초하고 발전시켰던 그는 자유로운 연구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의 눈에는 잡담하고, 신문 보고, 당구를 치는 등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런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자기 전의 약간의 짬을 내서 하루 종일 풀어낸 문제를 정리하고, 논문을 몇 편씩 써낼 정도였다.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는 추상화와 일반화라는 점에서 최고의 수학자였다. 그가 새로 도입한 개념 중에서 스킴이라는 개념은 대수기하학에서 다루는 대수다양체를(~다항식들의 해집합) 일반화한 것이다. 기하학적인 대상X 를 연구할 때는 그 위에서 정의된 '함수'들을 연구하거나 X로 들어가는 '함수'들을 연구하는데, 그 연구에 사용되는 방법론을 스킴이라고 한다. 이 개념은 대부분의 수학자들에게 반발을 샀고,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되었지만 성공적으로 발전하여 대수기하학을 이루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되었다. 이와 같이 그는 항상 수학의 최첨단을 달리는 것으로 유명한 수학자였는데, 그와 같이 작업하는 수학자들은 그의 창조성과 도발성에 좌절하고 분야를 바꾸거나, 그를 배제하려고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이슈가 된 수학자가 그레고리 페렐만이다. 그에 대해서는 그닥 많이 알려진 것이 없다. 어머니가 수학 전공이었기에 어렸을 때부터 수학을 배울 수 있었고, IMO 만점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는 것, 레닌그라드 대학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받고 상트 페테르부르크 스테클로프 연구소 연구원으로 지낸 것 정도가 다이다. 그 외의 업적을 찾자면 소울 추측을 증명하고, 리치 흐름 이론에 대한 세계적인 전문가라는 점 정도일ᄁᆞ. 하지만 그렇게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는 수많은 이슈를 낳았다. 유럽수학연합회 상을 거부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프린스턴, 스탠퍼드 등 세계 유수 대학의 초빙에도 거부를 나타냈다. 그것만이라면 그는 이슈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최초로 필즈상을 거부한 수학자가 되었다. 국제적 관계로 필즈메달 시상식에 오지 못한 수학자는 두 명이고, 증명의 초고가 40살이 되기 전에 완성했음에도 증명의 보완개정판이 늦었다는 이유로 앤드류 와일즈는 필즈메달 대신 실버프라이즈상을 받았다. 앙드레 베유처럼, 1회와 2회 수상 간의 공백 기간에 40살이 넘어 수상대상이 되지 못한 수학자들은 다른 버금가는 상을 받았다. 하지만,그는 수상 자체를 거부했다. 2003년 그는 자신이 있던 연구소조차 떠나버렸고, 2010년 클레이 수학 연구소에서 1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클레이 밀레니엄 문제 중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에 대한 수상을 공지했을 때도, 그는 고민하고 있다는 답장만 보냈을 뿐 끝내 시상식은 열리지 않았다. (지금 이 상은 시상 보류중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연금인 30파운드 정도의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고 전해지는 것이 그에 알려진 근황의 전부다.한 다큐멘터리에서 그의 행적을 추적하던 중 그의 집 앞에서 문을 두드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소!”

 

그레고리 페렐만은 단지 증명에만 집착한 수학자이다. 그가 수상을 거부하면서 한 말은 상은 필요없다. 증명된 것으로 충분하다였다. 그는 골드바흐의 추측에 몰두한 그리스인 천재 위상기하학자 크리스토스 파파키리아코풀로스(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한 외로운 수학 천재 이야기(골드바흐의 추측)에 나오는 페트로스 파파크리스토스의 모델이다) ,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어낸 집념의 타원-모듈기하학자 앤드류 와일즈를 이은 순수 수학을 추구한 마지막 수학자 대열 중 하나였다. 현대 수학은 수많은 분야가 더욱 정교해지고, 발전하고 있다. 응용수학의 발전이 갈수록 대두되고 있고, 분야의 분리가 심해짐에 따라 여러 분야를 모두 알고 있던 수학자는 없다시피 하다. 오일러나 가우스 같은 수학자가 사라진 지 어언 이백 년, 더 이상 수학에서 하디, 힐베르트, 푸앵카레, 폰 노이만, 에어디시 같은 사람들은 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수학은 아직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랭런즈 프로젝트는 타니야마 시무라의 추론 등의 수많은 정리가 증명되면서 수학을 통합의 길로 이끌어가고 있고, 날이 갈수록 정밀해지는 공리는 괴델의 말처럼 수학을 붕괴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의 빈틈을 메꾸어나가고 있다. 수학은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아직 우리가 다가갈 미래는 많이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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